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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이 모셔진곳을 관음전 또는 원통전(圓通殿)이라 한다. 물론 원통전이라는 이름은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때만 사용된다 [여수여천향토지]에 "전설에 원통전은 임진왜란때 불난 흥국사를 복원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지리산에 살던 한 이름난 목수가 흥국사를 찾아가보니, 다른 곳에서 목수가 와서 일을 맡아 버렸으므로 하도 원통해서 원통전을 지어 그 솜씨를 자랑했다"라고 하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으나, 대웅전과 원통전은 연대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어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원통이라는 말이 그 음이 같아서 생긴 속설로 잘못 와전된것 같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듯한 어떤 느낌이 있다. 당시 임진왜란이 난 후 사찰 전체가 소실되어 복구작업이 일어났을 때 제일 신경을 쓰고 힘들여 지은 건물이 대웅전이다. 이에 후대에 원통전을 지으려구 온 목수가 대웅전보다 더 특이한 건물을 짓고 싶어 특이한 작품을 남겼으리라는 것이다. 기능인들의 정신을 엿보게 하는 일화이다.

원통전은 그 이름대로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후불탱화로는 주로 아미타불화를 모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개 관음도를 봉안하고 있는데, 특히 다른 벽면에는 단독관음도를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단복관음도는 물론 극란전(極樂殿)에도 봉안되거니와 옛부터 관음을 주존(主尊)으로 하는 관음도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우리나라에서관음보살신앙이 가장 성행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팔작 지붕의 한 면이 전면의 현관 구실을 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뒷산의 영취봉을 배경으로 곁에는 시냇물이 흐르며 본사와는 거리를 두고 있음이 기도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통상적인 팔작지붕의 정면을 대하는 느낌은 이 건물에서 찾아볼 수 없고, 특이하게 팔작지붕의 정중앙에서 닷 팔작지붕의 측면을 잇대어 놓은 것 같아 매우 특이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열렸던 곳으로서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염불결사(念佛結社)를 했던 보광전(普光殿)이 본래 원통전 곁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결사를 하면서 염불기도를 할 때 그냥 일반법ㅂ당에서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탑돌이 형식으로 기도하게끔 되어 있다. 정면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보살상을 모신 법당공간은 매우 비좁고 전체를 둘러 마루를 깔아 돌면서 정진을 한 탑과 법당의 절충양식을 취했다. 이러한 양식은 주위 환경과 함께 절의 신비성을 더한다.

처마의 결구수법도 범상치 않다. 기둥 상단에 혀 같은 장식을 치레한 주심포(柱心包) 건물이면서 다포적(多包的)인 수법이 많이 첨가되었으며, 익공계(翼工系)의 수법도 표현되고 있어서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여 최대한 아름답고 기능에 알맞은 원통전을 만들고자 했던 거 같다.